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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창준 사망 소재, 황시목 이명 소재 주의

※  엔딩 이후

 

 

 황시목.

 

이름을 부르는 것은 늘 같은 목소리였다. 아주 다정한 것도, 아주 무감한 것도 아니고 단순히 상대를 지명하는 듯한 어조. 처음에는 대수롭지 않게 시작하다가 점차 음성에 힘이 실렸다. 시목이 눈을 뜨는 것은 그 순간이었다. 새까맣게 밀려오던 어둠이 차츰 사그라지고 사방이 밝아졌다. 앙다문 입술과 매서운 눈매, 뜻을 알 수 없는 시꺼먼 눈동자를 정면으로 마주하고 나면 그제야 이름 석 자가 잇달아 떠올랐다. 이창준. 시목은 무게도 느껴지지 않는 눈꺼풀을 느리게 닫았다 열었다.

 

 예, 차장님.

 

말을 끝맺자 혀끝에서 이질감이 느껴졌다. 차장님, 차장님이……, 맞나. 원래 그를 뭐라고 불렀는지 정확히 기억나지 않았다. 수많은 호칭들이 다발로 떠올랐다가 순식간에 사라졌다. 시목의 시선은 주위를 한 바퀴 굴렀다가 창준의 입가에서 멎었다. 창준은 천천히 팔을 내뻗었다.

 

 ……듣고 있니.

 

손가락이 망설임 없이 시목의 뺨 근처로 다가와 살갗 위를 감쌌다. 단단하고 투박한 뼈마디가 느껴졌으나 잠시뿐이었고 닿는 손길은 한없이 부드러웠다. 눈이 마주쳤다. 아. 시목에게서 짧은 탄성이 일었다. 내 웃지도 않던 그가 우습게도 다정한 눈빛을 하고서 얼굴을 마주 보려 들었다. 명백한 이질감, 그제야 알 수 있었다.

 

 차장님, ……, 수석님. 지금, 꿈입니까.

 

시목이 고개를 들자 뺨을 감싸 쥔 손이 따라 올라갔다. 창준은 조용히 고개를 기울였다가 말없이 입가만 실룩거렸다. 더 이상 목소리는 들리지 않았다. 눈을 다시 한 번 감았다 뜨자, 손가락 끝부터 아주 빠르게, 창준의 몸이 사선으로 조각나다가……. 부서진 것들은 어느 순간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시목이 다시 눈 한 번 질끈 감으면,

사방이 어두워졌다.

 

시목은 다급히 눈을 떴다. 조각난 어둠들이 으깨지고 난 직후였다. 창밖에서부터 쏟아지는 빛이 방의 절반 정도를 감싸고 있었다. 죄다 꿈이었다. 목구멍에서부터 통탄하듯 앓는 소리가 터졌다. 명백한 악몽이다. 시작이 어쨌든, 등장인물이 누구든. 결말이 이렇다면야……. 침대 시트를 헛손질하며 더듬다가 겨우 찾아낸 휴대폰이 새벽 다섯 시 오십 분을 알리고 있었다. 어쩐지 빛이 어정쩡하게 들어온다 싶었다. 며칠 피로가 누적된 탓에 뇌가 눅진했다. 가뜩이나 특검 때문에 예민한 채 몇 차례 같은 꿈을 꾸니 몸이 감당하기에는 벅찬 모양이었다. 부서지던 창준의 얼굴이 아득히 눈앞에서 흔들렸다. 왜 하필? 다른 그 누구도 아니고 이창준이라니, 이질감이 혀끝을 자꾸 맴돌았다. 어차피 다시 잠들 수는 없을 것 같았다. 시목은 아주 느린 동작으로 자리에서 몸을 일으켰다. 집은 고요했다. 고요하다 못해 아뜩했다.

 

 

 

 

  내가 너를…….

  목소리는 수화기 너머로 들리는 것처럼 군데군데 일그러져 있었다. 사내는 우악스런 손힘으로 시목의 어깨를 단단히 틀어쥐고 있었다. 잡은 손은 구속이라기보다는 결연 같았으며, 사내의 눈동자는 단정한 어조와 달리 잿빛으로 깊게 가라앉아 있었다. 그 모든 행위가 익숙했다. 이미 일어난 적 있었던 장면의 되새김질이었다. ……사내가 입을 열었다. 그리고 이어질 말은……

 

 “……검사님! 검사님!”

 

시목은 반사적으로 고개를 들었다. 잠이 들었었나? 언제? 눈앞이 아득하게 흐려졌다가 다시 선명해지기를 반복했다. 손에 서류 더미를 끌어안은 영이 말뚱히 책상 앞에 선 채였다. 감정을 숨기지 못하는 표정 안으로 호기심이 드문 읽혔다. 피로가 눌어붙어 무거워진 눈두덩에 시목이 손바닥을 대었다.

 

 “예, 말씀하세요.”

 “저번에 요청하셨던 김창식 총리 씨씨티비 관련 자료인데요……, 혹시 많이 피곤하세요?”

 “아뇨, 괜찮습니다.”

 

몇 번 문지르고 나니 눈동자를 굴리는 데에는 문제가 없었다. 시목은 자연스럽게 팔을 뒤로 뻗어 한 바퀴 돌렸다. 꿈에서 오래 붙잡혔던 어깨에는 뭐라도 남은 듯 욱신거렸다. 환상통이나 다름없었다. 이 탓에 집중력이 현저히 떨어지는 걸 스스로도 확실히 알 수 있었으니, 영의 눈으로도 어렵잖게 읽어낼 수 있을 터였다. 고개를 뒤로 한 번 크게 젖혔다가 바로 세우며 시목이 영을 바라보았다. ……시작합시다.

 

 

 

 

 “아니, 오랜만에 만났는데. 뭐 그렇게 죽상입니까, 죽상은?”

 

잔 내려놓는 소리가 다소 호쾌했다. 투덜대는 건지 묻는 건지 모를 말에 시목은 말없이 아랫입술만 비죽 내밀었다. 죽상 아닌데요. 피로와 술기운으로 눅눅히 젖어든 목소리가 목구멍을 비집고 나왔다. 여진의 미간이 자연스럽게 구겨졌다가 느리게 되돌아왔다. 뻗은 손은 익숙한 듯 소주병을 쥐었고, 비어 있는 시목의 잔을 향해 다시 움직였다. 청량히 차오르는 소리가 들렸다.

 

 “뭐, 또 누가 괴롭혀요?”

 “누구는 아니고요.”

 

끝의 끝까지, 잔을 완전히 채우고 나서야 여진이 손을 멈추었다. 장난기 어린 눈빛은 술잔에서 시목에게로 천천히 흘러 들어갔다. 병을 내려놓는 것과 거의 동시에 여진은 턱을 괴고 몸을 앞으로 당겨 앉았다.

 

 “꿈을 꾸는데요.”

 “꿈?”

 “예, 꿈이요. 그런데…….”

 

자연스럽게 이어지는 이창준이라는 단어를 시목이 혀 뒤로 감췄다. 새벽녘 느꼈던 이질감이 또다시 생생하게 살아 움직였다. 순간 둥그렇게 멈춘 시목의 입술이 곧 비슷한 모양으로 다시 열렸다.

 

 “자꾸 같은 꿈을 꿉니다.”

 

그래요? 여진이 긁는 소리를 내며 천천히 대꾸했다. 넘칠 듯 위태롭던 잔은 어느덧 여진의 손안에서 말끔히 비워진 모양이었다. 여진은 다시금 잔을 테이블 위로 내려놓으며 오만상을 지어 보였다.

 

 “뭐, 엄청 보고 싶은 사람이라도 나오나?”

 

보고 싶은 사람? 시목의 미간이 자연스럽게 움츠러들었다. 명백히 가벼운 농담조였음에도 불구하고 듣는 치의 표정은 진중해졌다. 시목은 입술만 몇 번 짓씹다가 느릿하게 답했다. 글쎄요……. 아닌 것 같은데,

 

보고 싶다고 생각한 적이 있던가? 시간은 꽤 오래 지났다. 한때 들썩거렸던 미디어는 이제 고요해졌으며 팔다리가 잘려나간 이곳의 체계도 어떻게든 몸체를 끼워 맞춘 뒤 자생을 시작했다. 그러나 시목은 이 모든 사건의 시작이라 할 수 있는 창준과 자신 사이의 관계도 쉽게 한 단어로 명명할 수 없었다. 소파에 기댄 몸이 점차 무거워졌다. 시목은 눈을 감았다. 고요가 증폭돼 도리어 시끄러웠다.

  ……괴물입니다.

그 외에 덧붙일 말이 당신에게 있던가? 아침부터 아팠던 눈두덩이 다시금 욱신거렸다. 몸 구석구석을 짓누르는 피로와 함께 점멸한 시야에 무언가 비쳤다. 창준의 뒷걸음질, 날카로운 바람과 목소리, 그리고 뒤로 펼쳐진 폐허 같은 풍경. 그의 마지막 순간이었다. 며칠이고 창준을 꿈에서 마주한 탓에 떠오르는 기억은 필요 이상으로 선명했다. 멀찍이서 바라보는데도 눈동자가 젖어든 것이 보였다. 입술은 맨눈으로 보일 만큼 선명히 떨리고, 금방이라도 중심을 잃을 듯 걸음은 박자를 놓쳤다. 하나, 둘…, 좀 천천히 오지. 물 머금은 목소리로 창준이 입을 떼자, 시목은 멍청히 놓고 있던 정신을 잡아챘다. 잡아야 한다. 잡아야 했다…. 발을 떼기도 전에, 창준의 모습이 빠르게 흐려지고 대신 둔탁한 소음이 일순간 머릿속을 지배했다. 극도로 낮은 마찰음이 뇌를 긁었다. 헉, 낮은 숨소리가 터지며 시목이 발을 내뻗었다. 발가락 끝이 뻣뻣이 굳었다. 시야가 몇 번이고 교차되었다. 익숙한 자신의 모습, 그리고 창준의 죽음, 그리고 다시 집안, 창준이 없는 공사장, 천장, 구조물…. 시목이 이를 세우자 채 뒤로 숨지 못한 혀가 자연스레 짓씹혔다. 아프다고 생각하기도 전에 머릿속이 먼저 하얘졌다.

  당신은 왜, 자꾸…….

시목의 팔목도 이어 단단히 곧추섰다. 손톱 끝은 소름끼치는 소리를 내며 몇 차례 가죽 시트를 할퀴었고 상처는 시목의 머릿속에서 울리는 소리와 거의 동일한 간격으로 새겨졌다. 고통은 직선으로 뚫고 들어와 곡선으로, 이어 사선으로 뇌를 헤집었다. 위태롭게 흔들리던 몸은 더 버티지 못하고 바닥으로 굴러 떨어졌다. 숨이 억지로 뽑혀나왔다. 느리고, 어지럽고……. 시목의 손바닥이 바닥을 짓눌렀다 떨어졌다. 어둠이 머릿속으로 떨어졌다가….

 

……황시목. 

하고 불렀다. …분명 익숙한 패턴이었다. 그러나 이번에는 여러 번 호명하지 않았다. 시목은 구겨진 얼굴을 펴지도 못하고 겨우 눈을 치떴다. 엎어져 있었던 것 같은데 두 다리로 멀쩡하게 서 있었다. 생각보다 머리가 아프지 않았다. 그리 괴롭지도 않았다. 시목이 고개를 숙이자, 눈에 띄는 것은 자신의 옷차림이었다. 손목까지 덮은 소매, 익숙한 품. 법복이었다. 고개 들어 앞을 바라보면, 눈앞에 있는 것은 역시나 창준이었다. 그런데 어딘지 묘했다. 시목의 머릿속 마지막 창준의 모습과는 다른 느낌이었다. 더 예전의 모습이라고 해도 무방했다. 창준이 황시목, 하고 다시 부르자, 시목은 예. 하고 대답했다. 입을 열고 나서야 깨달았다. 자신 또한 옛 시절의 얼굴을 갖고 있었다. 이마를 완전히 덮은 머리칼이 낯설었다. 눈앞으로 성큼 다가온 창준은 잠시 말없이 시목을 응시하다가 손을 뻗었다. 시목이 걸치고 있는 법복에 손을 대며 별로 정리할 것도 없어 보이는 옷자락을 몇 번이고 다시 다듬었다. 움직이는 둥근 손등을 바라보다가 시목은 다시 눈을 깜박였다. 뭐라고 부를지, 머릿속으로 말을 골랐다. 차장님, 검사장님, 수석님…, 수많은 호칭이 머릿속을 스쳐 지나갔지만 모두 혀뿌리에서부터 턱턱 막혔다. 이질적이라는 생각이 들었고 시목은 그 사이에서 겨우 단 하나의 이름을 찾았다.

 

  선배님. 

 

부르자, 창준의 손짓이 일순 멈추었다. 덤덤하던 입술은 매끄럽게 호선을 그렸다.

 

  듣기 좋네. 

 

들어본 적 있는 말이었다. 그토록 일그러졌던 기분을 이럴 때, 이렇게 되새기다니, 유쾌하지 못했다. 시목은 목구멍부터 무언가 막히는 것을 느끼고 천천히 숨을 골랐다.

 

  저번에도 똑같이 말씀하셨습니다. 

  저번? 

  예. 

 

창준은 미소를 지우고 눈을 가늘게 떴다. 명확히 알 수 없는 묘한 표정이었다. 옳다고도, 그르다고도 하지 않았다. 꿈속의 창준이 무엇인지 알 턱이 없었으나, 동시에 그는 무엇이라도 알 수 있었다. 시목이 주체인 꿈이었으므로 당연한 이야기였다. 시목은 무언가 덧붙이려고 하다가 말을 삼갔다. 입을 연다면 이 풍경이, 이 상황이, 이 환상이 완전히 부서질 것을 알고 있었다. 그러나 그것이 아쉬운 것도 불쾌한 것도 아니었다. 시목은 그렇게 생각했다.

 

  선배님, 선배님은……, 왜 여기 계십니까. 

  왜? 뭐, 내가 여기에 있는 게 꼭 잘못됐다고 말하는 것 같네. 

  정확히는……, 그렇죠. 

 

이번에는 다소 맥없는 웃음이 드리웠다. 그러나 아까처럼, 어떤 대답도 돌아오지 않았다. 어차피 시목은 알고 있었다. 이 사내는 이창준이 아니었고, 그 외형이나 말투가 동일하다 하더라도 단순히 기억의 조작에 불과했다. 왜냐하면 그는 현실에 없으므로……. 그렇다면 그가 여기에 있는 이유는, 그쯤에서 시목은 생각을 끊었다. 창준은 어깨를 바로 폈다.

 

  황시목. 

  예. 

  꼭 모르는 척이라도 해달라는 표정 같네. 

  ……. 

  시목아.

  예.

  너 찬물 맞아야지만 정신 드는 놈 아니잖아.

 

마주친 시선에서도, 표정에서도, 목소리에서도 이질감은 느껴지지 않았다. 시목은 천천히 주먹을 감싸 쥐었다가 다시 펼쳤다.

 

  선배님, 이거……, 

 꿈입니까?

 

시목의 혀끝이 입천장에 닿았다. 어차피 그는 늘 이방의 얼굴을 하고 있었다. 시목이 그에게 이방이었듯이. 시목이 문장을 끝맺자, 창준의 모습이 검은 풍경과 함께 조각나기 시작하고……,

……시목은 눈을 떴다. 그리고 혼자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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