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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릴 때 제일 좋아한 동화는 헨젤과 그레텔이었다.

 

나에게 형제는 없었다. 혼자서 떨어진 과자 조각을 주우며 숲속 길을 따라갔다. 그러면 예쁜 과자집이 나왔다. 내가 좋아하는 과자를 모아 만든, 엄마와 아빠가 기다리는 행복한 과자집. 그 어떤 것도 필요하지 않은 우리의 완벽한 낙원. 숲은 어둡고 컴컴했지만 부모님을 생각하면 무섭지도 않았다. 내가 넘어지면 달려와 일으켜 줄 것이다. 내가 손을 내밀면 다가와 잡아줄 것이다. 길이 멀고 고되어도 그 끝에는 반드시 빛이 있다. 그런 인생을 살아왔고, 그렇게 믿었다.

 

3년 전 그날 전까지는.

 

 “공부, 계속 할 수 있겠니?”

 

엄마가 수척한 얼굴로 물었다. 아버지가 쓰러지고 꼬박 열흘 만이었다.

 

아빠와 엄마는, 굳이 말하면 자식이 일순위인 부모보다는 서로가 일순위인 부부의 전형이었지만, 어린 자식이 그렇게 느끼지 못하게끔 살뜰하게 사랑해 준 분들이었다. 그런 외동딸이, 인생의 중대한 시험을 앞두고 아버지가 쓰러지고 집안이 무너지는 청천벽력을 겪었는데도 괜찮냐는 의례적인 안부 한 번 물어볼 겨를이 없었던 것이다. 열흘 동안.

 

물론 나도 마찬가지였다.

 

 “해야죠.”

 

어머니는 눈 밑이 움푹 패여 있었다. 물을 못 마신 식물처럼 푸석푸석했다. 엄마는 그런 사람이 아니었다. 황무지에 내던져져도 꿋꿋이 자라는 풀 같은 사람이었다. 고열이 나 꼬박 이틀 동안 앓아누울 때도 딸 걱정을 하며 웃던 사람이었다.

 

 “걱정 마세요, 엄마. 내가 누구 딸인데. 이런 일로 안 져요.”

 

이런 일. 하늘같았던 아버지가 몰락하고 온 세상의 웃음거리가 되며 우리 집이 통째로 흔들리는 게― 고작 ‘이런 일’.

 

 “내 걱정은 마요.”

 

엄마의 손을 꼭 쥐며 힘주어 말했다. 엄마는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안쓰러움과 애틋함, 죄스러움이 섞여 있었지만 열흘 만에 보는 제대로 된 미소였다.

 

늦게 얻은 아이였다. 물려받은 체질 탓인지 병치레도 잦았다. 갓난아이일 적엔 엄마도 아빠도 날 도무지 품에서 내려놓질 않았다고, 나중에 전해 들었다. 나를 낳았을 때 아버지는 이미 대쪽 같은 성품과 매서운 통찰력을 지닌 검사로 이름을 날리고 있었다. 아버지에 대한 내 최초의 선명한 기억은 사람들이 허리를 숙여 하던 인사를 받던 모습이었다. 집에서는 자상한 남편이자 아빠였다. 과보호적인 데가 있어서 사춘기엔 많이 부딪치기도 했지만, 내심 알고 있었다. 내 기질의 반은 아버지에게 물려받았다는 사실을. 아버지도 나도, 손에 들어온 건 결코 빼앗기지 않고 죽는 한이 있어도 지켜내는 사람이라는 것을.

 

꼭 아빠와 같은 길을 가겠다는 결심은 아니었다. 다만 그처럼 세상의 인정을 받는 자리에 서고 싶었다. 정상에 우뚝 서서 내 이름을 빛내고 싶었다. 그러자면 검사는 꽤 괜찮은 직업이다. 적성에도 맞았다. 범죄를 처벌하려면 우선 수많은 법조항과 판례를 외워야 한다. 즉 책상 앞에 앉아 몇 백, 몇 천 시간이고 공부해야 한다는 뜻이다. 공부라면 자신 있었다. 사건을 파악하는 직관도 나름대로 타고났다고 자부했다. 무엇보다도 중요한 것은, 남의 표현을 빌리자면, ‘물어뜯는 힘’이었다.

 

 “너 그럴 땐 무서운 거 알아?”

 

현철은 묘한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

 

 “언제?”

 “사건 경위 조목조목 따지면서 상대방 막 몰아세울 때?”

 

모의재판 얘기다. 현철에게 연습 상대가 되어달라고 했고, 거울을 보며 혼자 연습했던 걸 현철한테 시연하자 조금 기가 질린 얼굴을 했던 기억이 났다.

 

 “무서워서 싫다는 거야, 지금?”

 

일부러 눈을 세모꼴로 치뜨며 물었다. 현철은 음… 소리를 내며 고민하는 사람처럼 고개를 기울였다.

 

 “무섭긴 한데……”

 

현철의 얼굴이 다가왔다. 현철은 귓가에 입술을 붙이며 속삭였다.

 

 “섹시해.”

 

귀밑에 오소소 소름이 돋았다. 얇은 블라우스 천 위로 어깨에 닿는 현철의 손이 뜨거웠다.

 

현철만이 아니었다. 과 동기들 사이에서 나는 하이에나로 불렸다. 꼭 부정적인 뜻은 아니었다. 남이 먹다 남긴 찌꺼기를 주워 먹어서가 아니라, 도무지 남아나는 게 없도록 끝까지 상대방을 쫓아가 박살내 놓아서 하이에나였다. 그만하면 본인에게도 불똥이 튈 만한데 겁을 내지도, 몸을 사리지도 않는다나. 하긴, 라이온 킹에서 악당으로 묘사됐을 뿐 하이에나가 나쁜 동물인 것도 아니다. 동그란 귀나 암컷이 수컷보다 덩치가 크다는 점도 마음에 들었다. 한 교수는 칭찬하는 동시에 경고했다. 네 이빨은 잘 갈면 적을 공포에 떨게 만들 수 있지만, 자칫하면 자신의 몸에도 피를 낼 수 있는 양날의 칼과 같다고.

 

나에게 오기나 독기가 있다는 것쯤은 잘 알았다. 고등학교 때만 해도 쓰러져 가면서도 책상 앞을 떠나지 않는 타입이었으니, 틀린 말도 아니다. 하지만 단점이라고는 생각지 않았다. 그 오기가 얼마간은 자존심에서 비롯된다는 사실도 스스로 인지하고 있었다.

 

나를 버티게 해준 것 역시 그 자존심이었다.

 

처음에는 언론이었다. 뉴스를 틀면 열에 아홉은 법무부 장관의 비리 소식으로 떠들썩했고, 신문에는 언젠가 찍은, 아버지가 고개를 숙인 사진이 대문짝만하게 실렸다. 아빠가 쓰러져 입원했지만 병원 밖으로 한 발자국도 나서기 힘들었다. 기자며 카메라가 연일 문 앞에서 진치고 있었기 때문이다. 일주일가량 지나자 겨우 출입이 자유로워졌지만, 끝은 한참 멀었다.

 

학교 도서관에 가자 사람들의 시선이 느껴졌다. 평소에 영일재 장관의 자식이라고 떠들고 다닌 건 아니지만, 알 사람들은 이미 다 알았고 몰랐던 사람들은 그 일로 알게 되었다. 뇌물장관의 딸이라고, 앞에서 대놓고 지분거리는 사람은 없었다. 뭔가 잘못된 오보일 거라고 위로하는 사람도 없었다. 법무부 장관의 뇌물 비리는 희대의 추문이었다. 캠퍼스 내 카페테리아에서 뉴스로 갖가지 입방아를 찧다가 내가 지나가면 썰물이 빠져나간 것처럼 싸해졌다. 일주일도 안 되어 아빠는 결백하다고, 내가 다 밝혀낼 거라고 복도에서 소리 지른 날, 사물함에서 짐을 빼고 사설 독서실로 옮겼다. 집 근처에는 없어서 버스로 다녀야 하는 거리였다. 버스에서 나는 라디오 소리가 듣기 싫어 자주 걸어 다녔다.

 

3주 뒤, 현철과 만났다.

 

 “미안해, 은수야.”

 

오랜만에 본 현철은 울다 지친 어린애처럼 메마른 눈이었다.

 

 “진심으로 미안하다. 부모님이……”

 

현철이 고개를 숙이며 중얼거렸다.

 

 “아니, 이것도 다 변명이지.”

 

입술 안쪽을 꽉 깨물었다. 눈물이 나온다는 게 분했다. 내심 알고 있었는데. 그 애 집이 어떻게 나올지쯤, 예상하고 있었는데.

 

변시를 준비하기 시작하면서 현철과 만나는 횟수가 줄었다. 로스쿨 3년도 버텨냈던 사이였다. 시험 기간만 닥치면 연락도 끊다시피 했지만 현철은 이해했다. 대신 안부 전화 한 통씩, 그리고 뜸하게 만나는 그 시간에는 원 없이 데이트 하는 쪽으로 합의를 봤다. 학부 시절에는 서로의 집에도 곧잘 드나들었다. 벌써 5년째였다. 이렇게 간단하게 깨질 수 있는 것이었다, 5년이라는 세월은.

 

 “하나만 대답해줄래?”

 

복받치는 감정을 억누르며 간신히 입술을 달싹였다.

 

 “넌, 믿어?”

 

아버지가 거짓말쟁이라는 말을, 사람들의 수군댐을.

 

현철은 고개를 흔들었다.

 

 “안 믿어.”

 

현철은 아버지를 몇 번이나 만났다. 호랑이 검사로 유명한 장관이 애인의 아버지임을 알면서도, 어려워하지 않고 사근사근하게 대해 아빠도 썩 괜찮게 생각했다.

 

 “난 너랑 네 아버지 믿어, 은수야. 그런 분 아니라는 거.”

 “그럼 됐어.”

 

말을 자르듯 빠르게 대답했다. 과연 그럴까, 그걸로 괜찮은 걸까.

 

현철이 망설이며 입을 열었다.

 

 “저, 있잖아, 우리 친구로라도…….”

 

문장은 끝을 맺지 못하고 힘없이 사그라졌다.

 

고개를 홱 쳐들었다. 순간적으로 뺨을 올려붙이고 싶은 충동이 들었다. 부질없는 망상이었다. 충혈된 눈으로 노려본 다음 등을 돌려 그 자리를 떴다.

 

  ‘비겁해.’

 

나도 모르게 걸음이 빨라졌다. 잰걸음으로 뛰다시피 하며 손등으로 눈물을 닦아냈다.

 

  ‘비겁하다고, 오현철.’

 

믿는다고 말하면서 부모에게 반항하지 못한다. 미안하다고 말하면서 붙잡지는 못한다. 그런 녀석이었다, 현철은. 착하고 다정하고 나약했다. 알면서 그 다정함을 사랑했다. 내가 독하니까, 적을 물어뜯는 건 내가 맡으면 되니까, 다정한 사람과 함께하고 싶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독함이 없는 다정함은 때로 아무 도움도 되지 않음을, 그날 깨달았다.

 

무너지면 안 된다. ‘이런 일’로 질 수는 없다. 새 독서실에 들어간 날도, 현철과 헤어진 날도 새벽 늦게까지 공부했다. 술을 마시고 싶었지만 마시면 모든 걸 놔버릴 것 같았다. 취하는 심정으로 악착같이 시험 준비에 매달렸다. 검사가 되겠다는 결심은 오히려 공고해졌다. 이제까지는 나 자신을 위해서였지만, 지금은 내 두 어깨에 우리 집을 짊어지고 있었다.

 

나를 걱정하면서도 엄마는 힘들면 무리하지 말라거나, 진로를 다시 생각해 보라는 말은 하지 못했다. 불명예 해임된 비리 장관에게 손 내밀어 줄 곳은 어디에도 없었다. 어머니는 최근 전업 주부로 지냈던 데다, 입원한 아버지를 돌보려면 예전처럼 강사 일을 한대도 때려치워야 할 판이었다. 당장 쌀이 끊기거나 병원비가 부족할 정도로 가정 형편이 위태로운 건 아니지만, 미래를 생각하면 전망은 암울했다. 이제껏 검사, 장관의 봉급으로 살아온 경험도 무시할 수 없었다. 밥줄이 끊겨도 먹던 쌀을 바꾸기는 쉽지 않은 법이니까. 독서실을 바꾼 것을, 일주일 뒤에 아무렇지도 않은 목소리로 전했다. 현철과 헤어진 것은 한 달 뒤 지나가는 말처럼 알렸다.

 

그날 이후로 종종 꿈을 꿨다. 나는 어두운 숲속 길에 혼자 버려져 있다. 길에 떨어진 과자 조각들이 내가 얻을 수 있는 유일한 실마리였다. 과자 조각들을 따라 길을 더듬어 올라간다. 그러나 길은 가도 가도 끝나지 않는다. 쫓기듯이 헤맨 끝에 발견하면, 과자집이 아닌 불이 켜지지 않은 우리 집이었다. 문을 열고 들어가면 집은 텅 비어 나 혼자였다. 베란다 한쪽에는 덩그러니 놓인 사과 상자 하나가 있었다. 상자를 열면 나오는 것은 아무것도 없기도 했고, 돈다발이기도 했고, 독이 든 사과이기도 했고, 눈 감고 죽은 아버지이기도 했다. 아빠를 꿈에서 본 날은 식은땀을 흘리며 깼다. 아빠 방 앞까지 가서 몇 번이나 문을 두드리려다가, 문 너머로 뒤채는 인기척을 듣고서야 내 방으로 돌아왔다. 한참을 잠들 수 없었다.

 

강해져야 한다. 내가 우리 집을 지켜야 한다. 내가 아버지의 명예를 되찾고 우리 가족을 예전으로 돌려놓을 것이다. 내가.

 

퇴원하고도 세상을 등진 사람처럼 방 안에서만 지내던 아버지는, 내가 검사 임용에 합격했다고 외치며 문을 두드릴 때야 처음으로 방을 나섰다. 오랫동안 걷는 법을 잊어버렸다가 다시 배운 어린아이 같은 걸음이었다. 마치 뜻밖의 소식인 양, 딸이 변시를 준비하는 줄 몰랐다는 듯이, 믿기지 않는 얼굴로 나를 바라보았다. 그 눈에는 분명한 기쁨이 반짝이고 있었다.

 

서부지검 발령을 희망한 것은 나였다. 검사에 임용되고서부터 아빠와 법조계나 사건에 대한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눴지만 민감한 이야기는 서로 꺼내지 않았다. 아버지는 단지 불편해서 피했을 것이다. 예의 그 사건에 대해 아빠는 돈이 든 상자를 분명히 돌려보냈다는 말과, 이창준 그놈이 길러놓았더니 제 스승의 발에 도끼를 찍었다는 말 외에는 일체 언급하지 않았다. 나나 엄마가 뭔가 오해가 있는 게 아니냐, 일부러 함정에 빠뜨린 게 아니냐고 물어도 꾹 다물린 조개처럼 묵묵부답이었다. 누명을 벗기고 복수하겠다는 결심을, 아빠 앞에서 직접 말한 적은 없었다. 희망 근무지 1순위를 서부지검으로 적어 냈다는 말도 하지 않았다. 다시 발작하거나, 근심하거나, 반대하거나, 셋 중 하나일 테니까. 아버지가 아니라 조상신이 와서 말려도 나는 포기할 생각이 없었다. 발령이 난 날, 심호흡을 하고 문 안쪽으로 발걸음을 뗐다.

 

그곳은 하나의 거대한 숲 같았다.

 

 “오늘부터 우리 서부지검 형사부에 신임 검사로 근무하게 된 영은수다. 인사들 해.”

 

나를 소개한 사람은 형사3부 부장이라는 사람이었다. 어딘가 낯익은 얼굴이었다. 몰려 있는 사람들을 향해 인사를 꾸벅 했다.

 

누굴까, 이 중에서.

 

 “황시목.”

 “네.”

 “영 검사는 네 수습이다. 선배로서 잘 지도하도록.”

 “네. 그렇게 하겠습니다.”

 

지목된 남자가 고개를 까딱였다. 잘 부탁드린다고 인사하려고 했지만, 나를 보지 않고 부장만 보고 있었다.

 

황시목. 저 얼굴은 본 기억이 있다. 우리 집에 압수수색 왔던 무리 중 하나다. 그날 본 면면을 물론 전부 기억할 수는 없지만, 선두에서 드물게 담담한 얼굴로 아빠를 지나쳐 갔던, 그래서 기억에 남은 남자였다. 평소에도 그런 것인지, 오늘따라 언짢은 것인지, 아무튼 간에 살가운 성격은 아닌 것 같았다. 사수가 저런 사람이라면 정보를 캐내기도 어려울지 모른다.

 

 “‘그렇게 하겠습니다?’ 하여튼 말을 예쁘게 할 줄 몰라.”

 

간단한 환영 인사 모임이 해산되자 옆에 있던 검사가 들으라는 듯이 투덜거렸다. 하지만 그는 욕한 대상이 아닌 내 눈치를 힐끔 보더니 빙그레 웃었다.

 

 “나? 나 서동재 검사. 형사3부 부부장.”

 

서글서글하다기보다는 능글능글하다는 인상이다. 그래도 본 둥 만 둥 쌩까던 황시목보다는 대하기 편했다. 잘하면 도움이 될지도 모른다. 정중하게 인사하는데, 나를 못 본 체하고 앞서가던 황시목이 뒤를 돌아보며 불렀다.

 

 “영은수 검사. 따라와. 이쪽으로.”

 

아, 네. 가겠습니다. 뒤따라가려는 찰나, 서동재가 어깨를 올리며 잰 체하는 말투로 말했다.

 

 “영 프로. 앞으로 고생 좀 하겠다.”

 “네?”

 “황 프로 저 녀석, 별명이 이거거든.”

 

서동재가 관자놀이에 손가락을 빙빙 돌렸다. 무슨 소린지 딱 봐도 알겠지? 하는 듯한 표정이었다.

 

 “물어볼 게 있으면 나한테 물어봐. 다 한 식구 선후배 간인데. 그치?”

 “네. 그럴게요. 감사합니다.”

 

좋게 말하면 친밀하고, 나쁘게 말하면 얄팍한 사람이다. 하지만 거짓이 아닌 미소는 지을 수 있었다. 복도 저편에서 걸어오던 다른 사람을 만나기 전까지는.

 

 “오늘 신임 검사가 들어왔다면서.”

 “차장 검사님. 오셨습니까?”

 

차장 검사. 서부지검에서 현재 그 이름으로 불리는 사람은 한 명뿐이다. 거만한 자세. 교활한 얼굴. 사진에서 본 이창준 그대로의 모습.

 

일순 표정이 딱딱해지는 것을 느꼈지만, 입술을 당기며 웃었다. 허리도 공손하게 숙였다.

 

 “만나 뵈어서 영광입니다. 영은수라고 합니다.”

 

이창준이 눈썹을 치켜 올렸다. 엷은 미소를 잃지 않은 채였다.

 

 “영광? 나에 대해 잘 알고 있나?”

 “에이, 차장님 명성이야 하늘이 알고 땅이 알죠. 저희 같은 후배들에게 전설 아니겠습니까, 전설.”

 

알아서 비위 맞춰 주는 사람이 있으니 한결 수월했다. 순한 양처럼 얌전히 눈을 내리깔았다. 얇은 입술을 말아 올리는 미소가 꼴 보기 싫었다.

 

 “그럼, 수고들 해.”

 

발소리가 멀어져 간다. 동시에 앞에서 황시목이 다시 한 번 돌아보았다. 이번에는 말 잘 듣는 강아지처럼, 지금 가겠습니다, 외치고 종종걸음으로 쫓아갔다. 환영회에서 본 얼굴, 보지 못한 얼굴들이 가로수처럼 스쳐지나갔다.

 

누굴까, 이 중에서. 아버지에게 누명을 씌운, 우리 집을 몰락시킨, 이창준 외의 패거리는.

 

누가, 왜.

 

 “거기 책상 쓰면 돼.”

 

황시목이 평검사실 한쪽의 책상을 가리키며 말했다. 사무실에는 두 사람이 더 있었다. 두 사람이 어색하게 인사를 하자, 황시목은 마지못한 듯이 소개했다.

 

 “이쪽은 실무관님. 이쪽은 계장님.”

 

반갑게 다시 인사하는 두 사람은 황시목과는 성격이 판이해 보였다. 나도 모르게 안심을 했다. 그러나 자리에 앉자 내가 있는 곳이 어디인지, 나를 둘러싼 환경이 어떤지 확연하게 실감이 났다. 심장박동이 빨라졌다. 내가 어떤 목적을 가지고 이곳에 있는지, 심장이 말해주고 있었다.

 

하나의 숲 같다. 풀과 나무 대신 인간의 탈을 쓴 늑대들이 모인. 맑은 공기와 편안한 휴식 대신 비리와 음모가 빽빽이 채운. 무리도 없고 경험도 없는 어린 하이에나쯤은 쉽사리 짓밟아버릴, 먼저 살아남아야 정상에 올라설 수 있는, 그 속이 보이지 않는 어두운 숲.

 

이 숲에서 나 홀로 이방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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