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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 닳도록 아름다워서 그만

고개를 떨구는 다시 그런 계절입니다

숨이 턱턱 막히매 가슴을 치는

나와 당신께 이 봄은, 겨울보다 더 시립니다

 

 

언젠가는 별을 보며 그런 말을 했다.

 “검사님! 저 별 좀 봐요. 누구 닮지 않았어요?”

싱글벙글 웃는 낯이 시목을 가리키며 키득인다. 검사님을 닮았어요. 아주 많이요. 빛을 잃고 꺼져가는 회색빛의 별은 그렇게 하늘에 걸려 있었다. 밤하늘의 이방인처럼.

 

핵폭탄을 맞은 구역은 완전히 이방인의 나라 같았다. 그 언젠가 보았던 회색빛 별처럼. 자신을 닮았다던 그 별 같이. 흩날리던 핵 낙진은 오랜 시간이 흘러 사라졌고, 지하에 벙커를 구축하고 지하를 이어 새로운 사회를 이루었던 지난 세월이 꿈결처럼 느껴질만큼 멀었다. 꼬박 7년. 언젠가부터 말을 잃고 입을 꾹 다물고 있던 여진이 총을 고쳐 잡으며 앞서걷고 있다. 무너져가는 건물과 녹아버린 철심이며 타버린 동물뼈인지 사람 뼈인지 모를 것들이 한데 뒤섞여 굴러 다녔다. 폭발의 피해가 적은 곳을 찾아 떠돌며 오염되지 않은 자원을 찾기란 아주 어려운 일이다.

 

그 날도 구역의 아주 깊은 곳까지 들어가 간신히 통조림 수프 두어개와 물을 찾아냈다. 당연히 방사능 수치를 재는 기계 같은 것은 없다. 그랬기에 외관상으로는 기적적이나마 깨끗했으나 방사능에 오염되었을지 안 되었을지 모를 음식을 낡은 스푼으로 떠가며 먹었다. 노란 햇볕에도 잿빛 도시는 그 색을 한꺼풀 벗겨낼줄을 몰랐다.

 “시목 씨.”

 

오랜 시간이 지났으나 그 둘은 말을 놓는 법 한번 없었다. 그러나 검사며 경위며 하는 호칭을 입에서 떼어낸지는 오래다. 시민 한명 구하지 못 하고 벙커에 숨어들어 목숨을 부지한 여진이 크게 반발하며 자신은 더 이상 경찰이 아니라고 얘기한 탓도 있지만, 일단 이 세계가 어느정도 정상적으로 돌아가야 경찰이건 뭐건 하는 이야기를 덧붙일 수 있었다. 주기적으로 벙커를 드나들며 자잘한 정보통 역할을 하던 서동재는 이렇게 말 했었다. 세계 정부가 우리를 구하기 위해 고군분투 하고 있다지만, 다 소용 없는 일이지. 야, 황시목. 거기 통조림 좀 줘봐. 세계가 망했어도 거만한 태도를 잃을 줄 모르는 동재에게 순순히 음식을 건네고선 시목은 여진의 이부자리를 들쳤다. 그녀는 죽은 것처럼 잠을 자고 있었다.

 

훌쩍 떠나기로 했던 것은 그 날 새벽, 여진이 시목을 흔들어 깨우며 허리춤에 권총을 채워주었을 때였다. 각기 제 몫의 식량과 자원을 적당히 챙기고 지상으로 나섰다. 한동안 방독면을 쓰고 다녔지만 이내 찢어지고 손상되며 소용이 없어졌다. 그 뒤로 그들은 줄곧 그랬다. 전까지만 해도 곧잘 농담을 걸며 웃어오던 여진은 웃음을 잃었다. 시목도 더불어 입을 다물었다. 말 대신 정적만 그들 주변을 떠돌았다. 시목은 서류를 넘겨가며 사건을 분석하는 대신 사격하는 법을 배웠고, 여진은 강도를 만나면 망설이없이 사람을 죽여야 하는 법을 배워야만 했다. 그러나 그녀는 여전히 그런 것에 서툴렀다. 그래서 그들은 맞서기보다 피해다니는 편을 택했다.

 

 “뭐, 아무리 이런 상황이라고 해도요.”

 

경찰 존심이 있지. 힘 없는 웃음은 거칠고 정제되지 않았다. 예의 그 부드럽고 굳세던 웃음이 아니라. 마치 자신을 지탱하기 위한 마지막 줄처럼 느껴지는 말에 시목은 그녀의 손가락을 힘있게 쥐어주곤 했다. 달리 할 말이 없었다. 그들을 가볍게 위로해줄만한 카모마일도, 웃으며 시목을 반기는 실무관이나 계장도 곁에 없었다. 난리통에 헤어져버린지도 오래였고. 은수는 어떻게 되었을까. 창준은. 윤 과장은……. 그들은 아마 지하 속의 미로 같은 사회에서 아직 헤메고 있을지도 모른다. 나름대로 고군분투하며 살아가겠지. 그들은 모두 굳센 사람일테니까. 하지만 그런 시목의 작은 믿음도, 여진이 무너져가는 순간만큼은 함께 붕괴되는 것만 같았다. 경위님 같은 사람도 무너지는데. 아직도 습관적으로 경위님, 하는 호명이 튀어나올 때가 있었다.

 

비가 오려나. 벌써 이 말만 며칠째인지 몰랐다. 무거운 구름이 떠다니는 동안 그들은 여러 차례 다른 사람들의 벙커에 들어간 적도 있었다. 비를 피하게 해달라며 간청하기도 하고, 악취가 나는 벙커의 일을 해결해 주어 소정의 보상을 받기도 하고. 그러나 불신과 불결함이 가득한 이 땅에서는 그런 친절함을 베풀거나 베풂 받기도 어려웠다.

 

 “차라리 비가 한바탕 쏟아졌으면 좋겠다-”

 

시목도 그 말에 동의하며 가만히 고개를 끄덕였다. 벼락 맞은 것처럼 검게 그을린 나무에 기대 쉬다, 바람을 따라 흐르는 먹구름을 바라보며 한 말이다. 지친 것처럼 땀이 맺힌 이마를 시목이 훔쳐 주었다. 그러다 그들은 입을 맞췄다. 자연스럽게.

 

언젠가부터 그랬는지는 모른다. 완전히 낯선 이방인의 나라가 군림하고부터였을지. 서로의 마음을 확인한 적도 없었다. 고백이라던가, 데이트라던가 하는 시답잖은 일도 오가지 않았다. 단지 언젠가부터는 이렇게 입을 맞췄다. 서로를 더듬었다. 품에 안기고 울음을 터뜨리거나 가만히 앉아주었다.

 

 “그거 알아요?”

 

 나, 시목 씨한테 정말 실망 많이 했었어요.

 압니다.

 벙커에 들어오라고 권유했을 때, 얼마나 제가.

 

목이 메인 듯 말을 차마 끝내지 못한 여진이 울음을 삼켰다. 시목은 그저 그런 그녀를 망연히 안아주었다. 왜 그런지 아세요. 알고 있습니다. 나직이 그런 말을 주고받으면 종말 전의 향수라도 자극하는지, 코끝이 유난히 시렸다.

 

 “경찰이 자존심이 있지. 왜 그랬어.”

 

원망 아닌 원망을 던지며 시목의 뺨을 만졌다. 시목은 알고 있다. 부러져 버린 민중의 지팡이… 이런 때야말로 앞장서서 시민들을 구해내야 할 그녀가, 시목의 손 끝에 반 강제적으로 벙커에 밀어 넣어졌다. 그것도 연이 닿는 사람을 우선으로 하는 벙커에. 일반적인 시민은 거의 하나도 없었다. 전부 어떻게든 검사나 혹은 그 이상의 사람들과 연이 닿았거나. 사이렌 소리를 듣고 잠에서 깼을 때 시목이 곧장 차를 몰고 달려간 것은 여진의 집이었고, 허겁지겁 옷을 주워입고 있던 여진을 차에 던져 넣다시피 싣고 벙커의 위치를 향했다. 거리는 아수라장, 창문을 두들기며 안타깝게 그들을 향해 뭔가를 외치던 여진은 지친 것처럼 이내 잠잠해졌었다.

 

그때를 떠올리는 것처럼 입술을 오므리며 뭔가를 속삭이던 여진이 이윽고 조용해진다. 그러다 벌떡 일어나 시목의 손을 잡았다.

 

 “이제 갑시다. 너무 한 곳에만 머무르는 것도 안 좋을걸요. 여기도 강도가 꽤 많이 어슬렁거릴텐데.”

 

오늘 잠자리는 어디로 알아봐야 하나. 기지개를 길게 뿌드득 키며 한 말에 시목도 몸을 일으켰다. 배낭을 고쳐메고 다 부서져가는 대로변을 따라 걸으니, 주위가 어슴푸레 어둠에 잠겨간다.

 

 “오늘은 저기 어떱니까.”

 

시목이 가리킨 곳을 바라본 여진이 웃음을 터뜨렸다. 저기를요? 반문한 여진이 눈을 반짝이며 쪼르르 달려가 돌아보며 손짓한다. 시목이 가리켰던 곳은 호텔이라는 간판이 떨어져나가는 높다란 빌딩이었다. 그 위세가 당당하니 한눈에 봤어도 꽤 유명세를 자랑 했을 것 같은 특급 호텔이었다. 폐허가 된 도시 속에서도 우뚝 버티고 선 빌딩도 세월의 풍파는 어찌할 수 없었는지, 반쯤 부서져가며 간판은 거의 모든 부분이 녹아 사라지고 없다. 그나마도 덩그러니 남은 피스에 서부 호텔이라는 이름만 간신히 알아볼 수 있게 찍혀 있었기 때문에 호텔임을 알았다. 수도로부터 멀어진, 비교적 변두리 지역이라서 그런지 이따끔 멀쩡한 건물이 존재하곤 했다. 어째서 이런 외진 곳에 이런 고급 호텔을 지었는진 알 수 없었지만.

 

안으로 들어가니 텅 빈 프론트가 자신들을 맞이했다. 고장난 엘리베이터 대신 비상계단을 통해 위층으로 오른 후 문짝을 걷어찬 후에 들어선 객실은 지금까지 잤던 곳 대부분보다 사정이 좋았다. 먼지가 앉았지만 내부는 홀로 조용하고 깨끗했다. 아무래도 종말 직전에 머물렀던 손님이 두고 간듯한 물건으로, 탁자 위에는 더러운 책자 여럿과 이제는 형체를 알 수 없게 된 천 조각이 어지럽게 흩어져 있었다. 책을 살피던 여진은 이내 침대 위로 지친 몸을 눕혔다.

 

 “벙커는 어떻게 됐으려나?”

 “글쎄요.”

 

침대 끄트머리에 걸터앉은 시목이 중얼거렸다.

지하 세계는 생각한 것보다도 원만히 돌아갔다. 한국의 높은 인사들과 유망한 인재들이 모여 꾸린 세계였다. 벙커와 벙커를 이어내고, 그 속에서도 연구소를 차려 생존을 위한 연구를 이어나가며 더불어 그 속에서도 물자를 구하고 사람들에게 공급하는 것. 그 중에서는 과학자도, 의사도, 건축가도, 정치가도 있었다. 돈이라는 개념은 이내 사라졌으나 물물교환이 성행했다. 가끔 목숨을 구하고 위로 올라가 자원을 수집하는 사람, 되레 강도에 맞서 그들을 약탈하거나 물자를 빼내는 사람, 정보를 모아 그것을 파는 사람. 가끔 다툼이 벌어졌어도 늘 무기를 가진 자가 이겼다. 무법지대의 사회, 그러나 어째서인지 제 기능을 다하는 사회. 그런 비규범적인 사회가 종말을 맞이하여 작동한다. 기이한 일이었다. 이방인의 나라, 이교도의 나라가 있다면 이보다 부합하는 사회가 어디 있을까.

 

 키스 해줄까요.

 

나직이 읊조린 시목이 상의를 벗고 누웠다. 여진이 부드럽게 웃으며 그의 어깨에 제 팔을 감아낸다. 서로를 마주본 그들은 한동안 말이 없다, 조용히 입을 맞췄다.

 

종말의 입맞춤은 달았다. 서로의 가슴팍을 세차게 두드린 것처럼 가슴이 삐걱삐걱 쿵쾅쿵쾅 맞부딪히며 울었다. 그 박동이, 태동이, 새삼 살아있음을 알려준다. 온기를 찾아 미친 듯이 더듬고 입술을 부딪혔다. 젖은 입술을 느른하게 쓸어내며 웃은 여진의 뺨을 쓰다듬었다. 목덜미며 어깨는 이미 깊이 빨아들인 흔적 투성이었다. 서로의 숨을 삼키고 살갗에 입술을 묻고 코로 그 달큰한 향기를 폐부 깊이 들이키고…. 폐건물, 쓰러져가는 폐허의 도시. 완벽한 이방 나라의 직책을 잃은 이방인들은 그렇게 부쩍 깊어간다. 그것은 저주였다. 폐허. 늑대. 종말. 달. 폐허가 삼킨 종말. 늑대가 삼킨 종말, 그리고 이방인. 마주친 시선이 슬프게 웃었다. 마지막 입맞춤은 그렇게 길었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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