응급차는 좁은 골목길을 헤엄쳐 오느라 예상 시간보다 늦게 자살현장에 도착한 게 틀림없었다. 나는 미리 끌고 온 차 대신 119에 수석님과 함께 착석했다. 구급대원 몇 명의 역동적인 몸짓 뒤로 당신의 모습이 사라졌다. 하지만 나는 내 앞에서 똑바로 서 있는 당신을 볼 수 있었다. 무릎 아래가 물에 잠긴 것처럼 마냥 흐릿하지만 모로 봐도 이창준 민정수석임이 틀림없는 사람, 당신의 오른 손목에는 붉은 실이 매달려 있었다. 붉은 실은 당신을 울타리처럼 에워싼 사람들 사이를 지나쳐, 누워 있는 당신의 손목과 연결되어 있었다. 고개를 들어 당신의 입에 걸린 작은 초승달을 응시했을 때 나는 코앞에서 당신이 떨어지는 환각을 보았다. 팔을 뻗었으나 이미 떨어지는 당신을 붙잡기엔 너무 늦었다. 당신의 피가 내 얼굴에 튀는 착각이 들었다. 지상과의 거리가 꽤 차이 나는데도, 얼굴에 묻은 당신의 피 냄새가 눈에 선하게 그려졌다. 결국 마른세수를 했다. 나는 왜 당신을 잡지 못했나, 떨어질 것을 알면서도, 그 모습이 당신의 마지막 모습임을 직감하고 선배님이라 불렀으면서도 왜 나는 당신보다 느렸는가.
환자의 죽음을 예고하는 기계음처럼 삐- 하고 두개골을 관통하는 이명이 찾아왔다. 나는 기울어지는 세상 속에서 당신의 손목에 매달린 붉은 실이 툭 끊기는 것을 보았다. 사람들의 다급한 목소리로 어수선한 가운데 당신의 낯이 일그러졌다. 내가 낯선 이들이 만들어낸 소음 속에 잠겨 죽어가는 동안 사람들은 당신을 관통해, 젠가가 와르르 무너지듯 나를 향해 다가왔다. 당신은 처음부터 그 자리에 없는 사람이 되어버렸다.
◇
나는 자리에 서 있는 당신이 육신 없는 영혼임을 알고 있었다. 당신처럼 제자리를 잃고 떠돌아다니는 혼을 본 지는 꽤 되었는데, 한창 내가 어릴 때만 하더라도 부모는 벽을 보고 혼잣말을 하던 나를 보고 그저 혼자 놀기 좋아하는 아이로 여겼다. 나와 귀신 사이 이어지던 ‘비밀스러운 놀이’는 초등학교 입학 당일 수업시간에 처참하게 그 모습을 드러내고 말았다. 난 평소에 늘 그랬던 것처럼 장난기 많은 아기 동자를 따라 수업 도중에 반을 나갔고 그날로 나는 ‘머리가 아픈 아이’가 되었다. 부모는 다큐멘터리에서나 볼 법한 일이 제 아이한테서 벌어졌다고는 상상도 못 했다는 둥, 선생 앞에서 눈물을 흘렸고, 선생은 ADHD가 의심된다며 나와 부모를 정신병원으로 이끌었다. 의사는 귀신을 보는 눈 대신 내가 태어날 때부터 가지고 있었던 질병을 찾아냈다. ADHD는 아이를 자극하는 이명의 부산물에 불과하다. 또한 귀신이 보이는 환각도 그 이명이 원인일 것이다. 그것이 의사의 진단이었다. 의사는 수술을 권유했지만 아직까지 아이를 향한 사랑을 조금 가지고 있던 부모는 단칼에 수술을 거절했다. 아이의 목숨이 위험하다는 이유에서였다.
엄마, 분명 있다니까.
시목아, 아니, 제발, 시목아.
저기 있다고! 저기 진짜 있단 말이야! 할아버지가 엄말 보고…작은 여자애도 있고….
어머니는 내가 귀신을 볼 때마다 울었다. 아버지는 담배를 피려 바깥으로 사라졌다. 어느 순간부터 귀신을 보는 눈은 타인에게 들켜선 안 되는 것이 되었다. 나는 귀신을 보고 완벽히 모른 척하는 방법을 초등학생 그 어린 나이에 터득해서, 6학년이 되었을 즈음에는 바로 코앞에 피칠갑을 한 채 아래로 떨어지는 귀신을 눈 하나 깜빡이지 않고 무시할 수 있게 되었다. 부모는 아이의 환각 증세가 나았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이명은 여전히 골칫덩이로 남아 ‘부모’를 괴롭혔다. 나는 금세 부부가 낳은 사랑의 결정체에서 어디 떠넘기지도 못하는 무거운 짐이 되었다. 사랑은 끝내 깨졌다. 암암리에 퍼진 소문을 들은 나는 그 날, 지금 와서 기억을 더듬어 보건대, 온종일 울었던 것 같았다. 저 부부, 금슬이 아주 좋았는데 말이야. 어쩌다 저런 애를 낳아서.
◇
어머니는 내가 앉은 휠체어를 끌고, 목숨이 위험하다며 한사코 말렸던 그 수술대 위로 직접 옮겼다. 나는 아직도 그 초췌한 얼굴을 기억하고 있었다. 퀭한 얼굴로 내 팔을 붙잡으며 어머니, 당신이 내뱉었던 그 말들 또한 쉽게 떠올릴 수 있었다. 다름은 곧 틀림이며 그것은 죄나 다름없다. 행복했던 가정에 파문을 일으킨 것도 나의 존재 때문이다, 당신이 이렇게 아픈 것 또한 나 때문이라고, 알고 있었다. 수술대에 눕기 전 나는 어머니에게 죄책감의 눈물을 보였다. 내가 살면서 마지막으로 흘린 눈물이었는데, 당신은 끝끝내 그 선물을 받지 않고 무시했다. 나는 용서나 자비를 구할 수도 없는 위치에 있었다.
그 날의 기억은 날카로운 메스를 거치고 나서도 여전히 내 뇌리에 남아, 악몽의 형태로 자주 부활해 이명처럼 나를 끈질기게 괴롭혔다. 공기 좋고 물이 맑아 자가 면역 질환도 낫는다는 남해로 내려와서도 그대로였다. 어머니의 카랑카랑한 목소리는 여전했다. 해가 뜨기 전 옅은 푸른색이 사방에 깔렸을 새벽 5시에 일어난 나는 침대에 앉아 온몸을 적신 식은땀을 식혔다. 내 삶 자체가 내 존재가 가진 죄라는 것을 되새김질하며, 양 무릎을 가슴팍 가까이 끌어안아 몸을 둥그렇게 말은 채로, 가만히 있었다. 그렇게 한참을 앉아 있을 때면 서울에서 남해까지 따라온 당신이 내 곁에 앉곤 했었다. 노란빛이 도는 푸른색을 전신에 휘감은 당신은 오늘도 역시 날 끌어안고 등을 토닥여 주었다. 당신 때문에 등골이 서늘해져 이불을 휘감으면 당신은 꼭 미안한 표정을 지었다. 타인의 감정에 공감할 수 없는 나는 그런 당신을 이해하지 못했지만 왜 그런 표정을 지으냐며 묻지 않았다. 귀신의 일에 관여하지 않기로 약속한 지 어연 20년이 넘었다. 지금 와서 그 약속을 깨트릴 수는 없었다.
◇
자살한 귀신은 성불하지 못하고 평생을 이승에 남아 홀로 세계를 떠돈다. 보통 자살한 지 얼마 안 된 귀신들은 의외로 미련이 많아 사랑하는 가족이나 전생에 집착하던 물건 주변에 맴돌기 마련인데, 당신은 버젓이 가족이 있는데도 불구하고, 서울을 떠나 남해바다 옆 고속도로를 달리고 있는 내 차 뒷좌석에 앉아 있었다. 이따금 차창을 스쳐 지나가는 별들을 바라보며 당신은, 서울은 공기가 너무 안 좋아, 여긴 어떠니, 시목아, 뜻 모를 말들을 계속해서 중얼거렸다.
당신은 남해에 무엇을 두고 왔는가, 알 수 없는 노릇이다.
◇
진정이 된 다음에 먼저 찾아가는 곳은 욕실이 아닌 내 책상. 책상 위에 고이 올려둔 가죽 커버 수첩의 겉을 손등으로 쓸어내렸다. 겉표지를 열자 새하얀 종이가 나타났다. 나는 페이지를 한참 넘겼다. 남해에 온 지 1일, 2일…그리고 오늘, 남해에 온 지 30일이 되는 날, 당신이 죽은 지 49일이 되는 날. 평범한 귀신이라면 죽은 지 49일이 되는 날 저승으로 갔겠지. 나는 또다시 일기장에 아무것도 쓰지 못한 채 표지를 덮어두기에 급급했다. 난 내 뒤에 서 있는 당신이 중얼거리는 소리를 듣는다. 오늘도 못 썼구나. 괜찮아, 시목아. 천천히 쓰자. 당신은 평범한 사람이라면 당연히 듣지 못할 말을 했다. 내가 영안을 갖고 있는 지 당신은 분명 모르는데도, 산 사람을 향해 혼잣말하는 그 버릇은 49일이 되는 날까지 고치지 못했다.
다이어리를 보니 옛날 생각이 났다. 수술을 받은 이후 한동안은 내 어디가 달라졌는지 알지 못했다. 의사가 나에게 이제 감정을 잘 못 느끼게 될 수도 있다고 얘기했지만 마음에 썩 와 닿는 말은 아니라서 한 귀로 듣고 한 귀로 흘려버렸다. 집으로 돌아와 책상에서 일기장을 발견했을 때, 그제야 나는 내 변화를 인지할 수 있었다.
X 월 X일, 날씨 비. 하늘이 우중충하다.
엄마가 또 울었다. 나 때문에. 미안한 생각이 든다. 엄마는 맨날 나 때문에 운다. 엄마가 웃었으면 좋겠다.
미안한 생각, 그 생각의 정체가 무엇인지. 마지막으로 쓴 일기 다음 장에 펜을 갖다 댔다. 날짜, 오늘 날씨는 맑음. 그리고 난 일기를 쓸 수 없었다. '병원에서 퇴원해서 집에 왔다. 그리고 일기장을 펼쳤다.' 여기까지만 쓸 줄 알았다. 사실을 나열한 뒤 자신의 느낀 점을 쓰는 것, 보통 일기는 그렇게 구성되기 마련이나 나는 사실만 나열할 줄 알았지 내 감정을 서술하지는 못했다. 섬광이 번뜩 비치듯 의사의 말이 머릿속에 떠올랐다. 앞으로 넌 네 감정을 잘 못 느끼게 될 거란다. 마녀의 저주를 뒤늦게 깨달은 불쌍한 백설 공주는 그대로…나는 다급히 페이지를 앞으로 넘겼다.
오늘따라 이명이 심했다. 눈앞이 하얗게 변하더니 하늘이 무너지고 있었다. 나는 하늘에서 떨어진 구름을 밟고 앞으로 뛰었다. 하늘에 깔려 죽을 것 같아서.
친구의 손가락이 엿가락처럼 늘어나 피아노 위를 헤엄쳤다. 피아노 소리는 이명을 더 크게 들리도록 만들었다. 이내 친구의 얼굴도 얼음이 녹듯 아래로 흘러내렸다. 피아노에 저주가 걸려 있었던 게 틀림없었다. 그 모습을 볼 수가 없어서, 또 머리가 아파서, 난동을 부렸다. 피아노를 향해 걸어갔는데 그다음 기억이 없다. 정신을 차려보니 친구가 마디가 붉어진 두 손을 붙잡고 비명을 지르고 있었다.
엄마가 또 울었다. 내 팔을 붙잡고 죽자고 했다. 더는 못 살겠다고 펑펑 울었다. 가슴이 찢어지는 기분이 들었다.
잘못했어요.
◆
앞표지 뒷면에는 가족사진이 붙어 있었다. 그러나 나는 사진 속 어머니의 얼굴 앞에서 죄송하다는 말을 내뱉을 수 없었다. 감정을 느낄 수 없다, 그 말은 과거의 나 자신이 남긴 감정 또한 읽을 수 없다는 뜻을 내포하고 있었다. 갑자기 머리가 아팠다. 뒤로 몇 발짝 물러나니 손에 들려 있던 일기장이 아래로 떨어지는 둔탁한 소리가 났다. 지금의 나는 아무것도 느낄 수 없는데, 어째서 과거의 나는 저리 다채로운 언어를 사용할 수 있었던가. 다신 듣지 못할 것 같던 이명이 뾰족한 창이 되어 내 관자놀이를 찔렀고 나는 속수무책으로 쓰러졌다.
◆
눈을 떴을 때 나는 차디찬 병실에 누워 있었고 의사는 엄연히 감정을 드러낸 표정을 지었다. 하지만 난 그 표정에 숨은 뜻을 이해할 수 없었다.
◇
태어날 때부터 남들과 달랐던 나는 수술을 통해 완벽히 이 세상으로부터 동떨어진 이방인이 되었다. 축하해주는 사람은 없었다. 애초부터 축하를 받거나 해 주고 싶은 감정조차 느끼지 못했다. 혼자가 익숙했고, 나 이외에 다른 사람이 곁에 존재하는 상상 역시 해 보지도 않았다.
◇
남해의 아침은 쌀쌀했다. 운전석에 착석한 나는 텅 빈 뒷좌석을 보고 일부러 휴대폰을 꺼내 이메일을 뒤적였다. 아니나 다를까 몇 초 안 되어 당신이 뒤에 앉았다. 당신은 새벽녘 하늘을 말갛게 물들인 옅은 노란색 미소를 입에 걸고 있었다. 남해에 온 뒤로 나는 하루도 빠짐없이, 당신이 뒷좌석에 올라타고 나서야 시동을 걸었다. 공간의 이동이 자유로운 귀신은 굳이 차를 탈 필요가 없었다. 그리고 당신이 무조건 내 차를 타고 나를 따라다닌다는 보장 역시 없었다. 약속을 한 기억은 없었다. 약속은 숨 쉬는 것처럼 자연스레 나와 당신 사이에 만들어졌다.
시목아, 날이 쌀쌀하네. 좀 더 단단히 입고 나오지 그랬어.
그 말을 들은 나는 액셀을 밟지 않고 내 옷차림을 확인했다. 아침이라 조금 추운 감은 있지만, 곧 더워질 테니 이렇게 얇게 입어도 상관없을 것 같았다. 당신의 말을 떠올리며, 나는 당신이 언제부터 내 일상의 일부가 되었는지 곱씹었다. 아침에 알람 대신 당신의 목소리를 듣고 일어나, 당신과 함께 휴대폰으로 아침 뉴스를 보고, 무슨 옷을 입을 지 고르며 하루를 시작한다. 출근할 때도 지검에서 일을 할 때도 늘 당신이 곁에 있었다. 어느 날 당신이 사라진다면, 불현듯 그런 생각이 들었지만 금방 사라졌다. 당신은 자살했기에 애당초 그런 일은 일어날 수 없었다. 안일하다면 안일한 생각이었지만 인간은 편리한 것을 추구하는 모순적 존재라, 합리적인 의심마저 지우고 마는 것이었다.
◇
나는 과거의 내가 썼던 일기장, 그 모든 기록들을 사진을 찍듯 기억하고 있었다. 앞표지 뒤에 꽂아 두었던 사진 역시 기억하고 있었고, 이젠 볼 수 없는 아버지의 얼굴과 환히 웃고 있는 어머니의 얼굴까지 모두 빠짐없이 떠올릴 수 있었다. 평범한 사람이라면 그 기억들은 빛바래고 왜곡되어 형체를 잃은 채 머릿속을 부유하고 있겠지만, 수술의 부작용으로 뛰어난 기억력을 가진 나에겐 별일 아닌 능력이 되어 버렸다.
하지만 사진이 아닌 현실에서 환히 웃고 있던 어머니의 얼굴은 떠오르지 않는다. 아버지의 얼굴은 지우개로 말끔히 지운 듯 평소에 어떤 옷을 즐겨 입고 다녔는지조차 기억나지 않았다. 내가 기억하고 있는 것은 몇 개의 조각들 뿐. 왜 그 순간들은 기억하지 못할까, 기억하지 못하는 게 아니라 아예 존재하지 않는 기억들이라면….
◇
남해로 좌천된 이곳에서도 나는 여전히 이방인이었다. 나는 비리를 척결한 용기 넘치는 검사이기보단, 동료의 등에 아무렇지 않게 칼을 꽂을 수 있는 위험한 검사였다. 따돌림은 은근했지만 노골적이었다. 손에 피 묻히는 걸 끔찍이도 싫어하는 검사들이 어떤 수법을 쓰는지 나는 너무 잘 알고 있었다. 그러나 나는 아무렇지 않았다. 애초에 외로움이라는 것을 느낄 수 없는 인간이었으니까.
◇
어머니가 나를 향해 저주를 퍼부었다. 내가 할 수 있는 일이라곤 죄송합니다, 감정이 담기지 않은 말을 수백 번 반복하는 것밖에 없었다. 속에 뭉쳐둔 원망 일부를 속사포로 뱉어낸 어머니는, 갑자기 자리에서 일어나 내 어깨를 뒤로 밀쳤다. 작고 여린 몸뚱아리는 저항 한 번 해보지도 못하고 바닥에 머리를 찧었다.
◆
점심시간, 식사하고 남은 30분 동안 잠시 눈을 붙였는데 악몽은 때와 장소를 가리지 않고 찾아왔다. 꿈속에서 바닥에 부딪힌 부분이 계속 아팠고, 온몸이 자잘하게 떨렸다. 악몽은 잊고 있던 내 죄를 상기시켰다. 어머니의 불행은 나의 탄생으로부터 시작되었다. 누군가가 다치고, 울고, 마음에도 상처가 생긴다고 하면 수천 명이 나로 인해 상해를 입었는데, 그 또한 내 잘못이었다.
나는 살아있는 것 자체가 죄였으나 죽고 싶다는 생각조차 못 해서 여전히 살아있었다. 살고 싶다는 생각은, 당연하게도 한 적이 없다. 꿈에서 깬 뒤 책상에 엎드려 가쁜 숨을 골랐다. 그때 작은 의자에 앉아 있던 당신이 나에게로 다가와 내 등에 손을 얹었다. 날개뼈가 시리도록 아팠다.
시목아, 당신은 한참 낮은 목소리로 내 이름을 불렀다. 당신 외에는 아무도 날 이름으로 부르지 않았다. 그래서였나, 당신의 부름에 자잘하게 이어지던 몸의 떨림이 멈춘 것은. 그리고 당신은 두어 번 더 내 이름을 불렀다. 마치 자장가의 도입부처럼 들린 그 말은 절로 내 눈꺼풀을 아래로 떨어트리게 했다. 그는 내 등을 허공으로 쓸어내린 다음 내 어깨를 붙잡았다. 시목아, 괜찮아. 넌 잘못한 게 없어.
나는 고개를 들어 내 옆에 서 있는 당신을 마주했다. 당신은 온화한 미소를 짓고 있었다. 나도 모르게 입술을 깨물며 중얼거렸다. 잘못이 없어요, 내가? 당신의 얼굴이 눈에 띄게 변했다. 눈동자는 튀어나올 것처럼 커졌고 눈썹이 위로 꿈틀거렸다. 내 눈높이에 맞춰 수그러들었던 당신의 몸이 곧게 펴졌다. 달싹이는 당신의 입술을 보아하니 또 그 낮고 부드러운 목소리로 내 이름을 부를 것 같아, 내가 먼저 선수를 쳤다.
그 입 닥쳐.
당연히 당신은 예상하지 못했겠지만 나 역시도 미리 알지 못한 반응이었다. 심장이 터질 듯 벌렁거리며 뛰었다. 당신이 뭔데, 당신이 뭘 아는데, 대체 내 앞에서 무슨 소리를 지껄이는 거야? 나는 대책 없이 아무 말이나 내뱉었다. 머리를 쪼개는 날 선 이명은 오래전에 다짐했던 약속이 산산조각으로 부서지는 소리였다.
당신은 내 눈을 지그시 바라보다가 이내 눈을 감았다. 미안하구나, 시목아. 미안해. 그리고 당신은 연기처럼 사라졌다.
◇
퇴근하러 올라탄 차 안에서 10분을 노닥거렸지만 당신의 모습은 코빼기도 보이지 않았다. 10분이 지나자 나는 더 기다리지 않았다. 어차피 당신은 내가 알 수 없는 이유로 남해에 머물러 있을 수밖에 없는 귀신이었다. 차가 아니라면 집에 있겠지, 그렇지만 백미러를 통해 뒷자리를 보는 횟수가 평소보다 훨씬 많았다. 왜 그렇게 느꼈는지 알 수 없었다. 백미러로 볼 수 있는 것은 뒤에 난 창 너머 짙게 깔린 밤하늘뿐인데, 뭐가 그리 보고 싶어서 나는 백미러로 아무것도 없는 하늘을 보았을까.
당신이 나에게 했던 말을 곱씹었다. 너에겐 죄가 없어, 그럴 리가. 내 존재가 한 가정을 불행하게 만들었는데도, 누군가의 행복을 짓밟고 살아왔어도 죄가 없다고 말할 수 있나. 그렇지만 당신은 내 과거를 알고 있는, 몇 없는 사람이었다. 당신은 아버지와 어머니가 내가 태어나기 전 정말 행복하게 살았으며, 내가 태어나고 난 이후로 많이 다투고 싸웠음을 알고 있을까. 살면서 괜찮다고 말해준 사람이 없었다.
◇
언제부터 날 보았니.
집에 돌아오니 소파에 당신이 앉아 있었다. 서류가 잔뜩 든 가방을 입구 근처에 내려놓고 신발을 벗었다.
“처음부터요.”
귀신을 본 나이는?
“태어날 때부터 봤습니다.”
왜 아무 말도 안 했어.
텔레비전을 향해 있던 당신의 눈이 내 얼굴을 향했을 때 나는 차마 바로 대답하지 못했다. 그 눈이 세상 어느 바다보다 더 깊고 어두웠기 때문이었다. 나는 당신의 표정이 무슨 뜻을 함축하고 있는지 알 수 없었다. 나는 당신의 얼굴을 눈에 담는 대신 아래로 눈꺼풀을 내리깔아 그 시선을 피했다.
“아무도 믿지 않았습니다. 수석님도 믿지 않으셨겠죠.”
하긴…그렇긴 해. 나도 내가 이렇게 될 줄 몰랐으니까.
무거운 침묵이 흘렀다. 갑갑한 나머지 맨 윗단추를 열고 넥타이를 느슨하게 풀었다. 그리곤 말라비틀어진 기침을 했다. 당신은 끝까지 날 보고 있었다.
…네가 잠꼬대를 했어. 아까 낮에. 점심시간 때.
순간 앞이 어지러웠다. 찬찬히 기억을 되짚었다. 잠꼬대한 기억 자체가 없었다. 정신이 저 멀리 아득해지더니 시커먼 아래로 곤두박질쳤다. 이명이 정신의 문을 두드리고, 나는 당신으로부터 도망치기 위해 본능적으로 뒷걸음쳤다.
미안하다는 말만 반복했었지. 누구한테 하는 얘기인지는 모르겠지만.
등에 딱딱한 벽이 닿자 절로 숨넘어가는 소리가 나왔다. 어느새 당신은 자리에 일어서, 엎어지면 코 닿을 거리에 있었다. 심장을 꿰뚫어보는 것 같이 내 눈을 똑바로 보고 있는 당신의 얼굴을 도저히 마주 보고 있을 수 없었다. 나는 당신을 피해 아래로, 아래로 떨어졌다. 옷이 벽에 쓸리는 소리가 났다.
네가 무슨 잘못을 했다고. 자세한 사정은 잘 모르지만, 아니, 시목아.
사람 많은 사거리에서 발가벗겨지는 기분이 이랬던가.
사과하지 말렴, 넌 잘못한 게 없잖니.
“아니, 아니요.”
메마른 두 손으로 뜨거워진 얼굴을 쓸었다. 이명이 다가와 어깨를 툭툭 쳤다. 다시금 어머니의 외마디 비명이 들렸다. 넌 어째 네가 잘못한 것도 모르니. 수술했으니까요. 수술하면 다야? 요즘 조용히 지내고 있지 않습니까, 또 무엇이 마음에 들지 않아서…. 너 자체가 너무 마음에 안 들어. 그래요, 알고 있습니다.
“죄는 제 삶의 원동력이었고.”
이명이 점점 더 크게 들린 나머지 두 손으로 양쪽 귀를 틀어막았다.
“제 존재 자체가 누군가의 고통이었고 불행이었으며.”
그래도 아래에서 나를 뚫어져라 쳐다보는 당신의 시선은 피할 수 없었다.
“그렇기에 저는 용서받을 자격이 없습니다.”
정말로 없다고 생각하니?
“….”
시목아.
저 멀리서 누가 내 옷자락을 잡아당기고 있었다. 옷을 뚫고 들어와 척추가 얼얼할 만큼 차가운 기운이 느껴질 정도로 그 사람의 손은 냉랭했다. 그래서 누가 날 부르는지 충분히 알 수 있었다. 나는 그의 부름에 답하기 위해 눈을 감았다. 작별인사를 할 때가 된 것 같았다.
◇
너는 태어나지 말았어야 했어.
눈물범벅이 된 얼굴로 몸을 둥글게 말고 앉아 나에게 폭언을 퍼붓는 어머니의 눈을 마주했다. 그녀의 얼굴이 비참하게 일그러졌으나 나는 표정 하나 바뀌지 않았다. 그녀가 핏줄이 터진 눈으로 나를 찔러 죽일 듯 노려보았다.
어째 넌 표정 하나 바뀌지 않니.
“그렇게 얘기하시면, 속이 풀리십니까. 화가 사라지나요."
붉게 핏발이 선 그녀의 눈을 오롯이 바라보았다. 옷매무새를 바로 정리했다. 완전한 작별은 아니지만, 그래도 한동안은 당신을 볼 일이 없을 것 같으니, 마지막은 적어도 깔끔한 모습을 보여줘야 하지 않겠는가.
뭘 잘했다고 눈을 그렇게 치켜들어?
“저는 당신의 눈을 피할 필요가 없습니다.”
너에겐 죄가 없어, 사과하지 마. 내 등 뒤에서 후광이 비치듯 멀리서 당신의 힘 있는 목소리가 들려왔다. 나는 당신의 목소리를 지지대 삼아 몸을 반듯이 기댔다. 한쪽 입술 끝이 순간 유달리 가볍게 느껴졌다.
“저는 잘못한 게 없습니다.”
나는 그 말을 듣고 싶었던 것이었다.
“인정해주세요. 다 맞는 말이라고, 너에겐 죄가 없다고.”
가시꽃으로 장식된 월계관을 이제 벗어도 된다는 말을, 어머니 당신이든 수석님 당신이든 그 대상에 상관없이. 어느새 그녀의 얼굴이 남자의 것으로 바뀌어 있었다. 나는 당신의 어깨를 향해 손을 뻗어 반쯤 흐느끼고 있었다. 나는 왜 우는지는 몰라도 눈물을 흘린 사실은 알 수 있었다. 아픈 목과 떨리는 발성과 얼어붙을 만큼 차가운 눈가가 그 증거였다.
시목아, 내가 왜 널 따라왔는지 아니?
당신에게서 햇볕에 흠뻑 적셔진 이불 냄새가 났다. 졸음을 유도하고 이불에서 벗어날 수 없게 만드는 그 냄새가 아무것도 없어야 할 집 안에 가득 차 있었다. 난 홀린 듯 가시에 손이 찔리는 것도 개의치 않고 월계관을 땅바닥에 내려놓았다. 편안하다, 그 말의 뜻을 이제 알 것 같았다.
사실 네가 날 보고 있다는 것 정도는 짐작하고 있었어. 응급차에서 쓰러지던 네가 날 불렀거든. 진짜 몸이 누워 있는 곳이 아니라 내 영혼이 서 있는 곳을, 네 눈이 향해 있었지.
“미련을 풀었으니, 이제 돌아가실 겁니까.”
아직이야.
“아직이라뇨.”
어디 가지 않을게. 난 여기에 있어, 시목아. 네가 가지 말라고 했잖니, 방금 전에.
“제가…언제 그랬습니까.”
당신이 내 목덜미를 휘감았다. 성대가 얼얼할 정도로 당신은 차가웠지만 그 목소리만큼은 따뜻했다. 그가 다시 내 이름을 불렀다. 시목아, 당신의 목소리가 너무 뜨거운 나머지 바닥에 버려두었던 월계관이 활활 타오르기 시작했다.
불길을 눈으로 쫓았다. 보기만 했는데도 어깨가 훨훨 가벼워졌다. 나는 넋이 나간 사람처럼 중얼거렸다. 한 번만, 한 번만 더요. 그러자 당신은 내 부름에 응답했다. 네가 잘못한 건 없어, 그러니 이제 자자. 푹 쉬고.

